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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을 대체하는 초록색 액체의 전설~

    Memories

@2020. 5. 1.


먼 길 떠나신 아부지가 오랫동안(아마도 청년시절부터..?) 쓰셨던 스킨이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로 그 초록색의 강력한 이 녀석!




아부지는 한국 전쟁 당시 전투병이 아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과 계셨다고 한다..

(대체 복무였는지 먹고 살 일이 막막해서 일하러 가신건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아마도 여기서부터 아부지와 Skin Bracer와의 인연이 시작된게 아닐까싶다..


욘석은 말이 스킨이지 강력한 한방이 있는 제품이다.. 아주 화끈화끈~ 향도 엄청 독할 정도~~

아부지 왈, 알콜 함량이 높아서 좋은 것이라고~ 하셨던 꼬꼬마때부터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해서, 욘석은 스킨의 목적보다 우리집에선 '빨간약'을 대체하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모기에 물려도 욘석~ 자빠져서 팔다리에 피가 철철 흘러도 욘석~ 눈 다래끼가 생겨도 욘석~이었다..

효과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좋다!

찍어 바르는 그 순간의 고통은 엄청나지만 화끈거림은 이내 사그라들고 효과가 정말 좋았다..


꼬꼬마였을때 눈 다래끼가 생기면,

어무이는 도망가려는 나를 붙잡고 아부지가 스킨병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공포의 연속이었다..

스킨을 바르면 1초도 지나지 않아 울음을 터트리는건 정해진 코스였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5초쯤 지나면 눈가가 시원해지면서 울음이 멈춰지고, 스킨이 마법을 부린듯 몇 시간 뒤엔 눈 다래끼가 없어지곤 했다..

정말 눈 다래끼에는 찍빵이었다~ @.@


그렇게 우리집에서 수십 년을 함께한 녀석이다..


조카 1호기가 태어나고 쬐금 커서 말이 통할 나이 즈음에 아부지가 이걸 조카 1호기한테 주시더라..

한 병이면 일 년도 더 쓰는데 조카 1호기는 금세 한 병을 다 비운다고 한참 뒤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랬던건가.. 다른건 시큰둥한 녀석이 이건 넙쭉넙쭉 잘 받아가더라..

할아버지의 이런 면을 닮았구나 싶어 어무이랑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건강하실 때만 해도 다른 물욕은 그리 없던 분이 이건 왜그리 사다 모으던지..

이미 오래 전에 국내 화장품 회사에서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내는데도 오리지널과 다르다며 굳이 깡통시장에 이걸 사러 다니시더라..


그렇게 수십 년.. 치매로 자기 이름밖에 기억을 못 하던 분이 이건 꼭 사다놓으라고..

세안 후에 얼굴에 바르는건 기본이요, 머리에도 한줌을.. 옷에도 찍어 바르시고 여름엔 덥다고 팔뚝에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이미 집 여기저기 선반에 서랍 안에 스킨이 쌓여 있는데도, 그렇게 어무이에게 사다 놓으라고 잔소리 하셨던게 몇 년..

먼 길 떠나시고 나서, 아부지가 계신 납골당에 그토록 좋아하셨던 Nikon F 카메라와 이 스킨을 넣어드렸었다..


나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이 스킨을 쓰지 않았다.. 이유는 향이 너무 강해서이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이 스킨을 찍어바르고 있더라.. 스킨 원래의 용도 외에 여기저기에 소독용 알콜을 대체하는 용도로 두루두루......

은근슬쩍 아부지가 하시던대로 나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부지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스킨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 소독용 알콜을 두 병 샀다..

스킨 사러 간다고 어무이께 얘기하면 엄청 웃으실듯..



수십 년 동안의 기억들,

이 스킨과 끈이 닿아있는 그 잊혀지지 않는 강렬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짧게나마 글로 남겨본다..

머릿속 조각나 흩어져서 가물가물했던 기억들을 선명하게 모을 수 있게 도와주신 『 프레임 안에서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