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꼬꼬마였을 때만 해도 좋은빠릿빠릿하니 딱지 만들기 좋은.. 종이가 귀했다..
문구용품인 마분지로 딱지를 만들었다면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을 테고.....
삼삼오오 동네에서 딱지치기가 시작되면 볼만했다..
신문지 접은 딱지..
잡지 표지, 전과 표지만 찢어 접은 딱지..
잡지 속 컬러사진이 있는 빠릿빠릿한 종이만 찢어내 접은 딱지..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은 교과서 표지 찢어서 접은 딱지였다..
아마도 그 딱지의 소유주는 담임쌤한테 좀 맞았을 것 같은데.. ㅋㅋ
여하튼 꼬꼬마인 나는 좋은 종이를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초딩학생이던 친형이 폐품 모으는 날이면 종이를 조금 가져왔다.. 딱지 만들기 아주 좋은 종이를.. 구세주!
동네 딱지 다 따먹을 욕심에 무려 양면딱지를 힘주어 꽉꽉 접었더랬다..
그것도 당시 나의 기준에 가장 성능이 좋아 보였던 - 이 딱지로 동네 동생들 딱지 다 가져갔었던 대마왕 같던 형의 딱지다 - 빠릿빠릿한 종이와 신문지를 붙여서 접는 양면딱지였다..
빠릿빠릿한 종이라 붕 떠있는 느낌.. 밟아도 밟아도 딱지 위에서 널뛰어도 압축이 되질 않는다..
친구 놈이 그런다.. 버스 지나갈 때 던지자!
우주 히어로일 것 딱지를 그렇게 완성하고 동네 동생들 딱지 다 잡아가는 대마왕 형에게 도전!
무겁고 딱딱하고 천하무적일 것 같은 나의 조커! 딱지를 동네 형에게 잃었을 때는 세상을 잃은 듯 슬펐다..
정말 슬펐다.. 만든다고 식겁했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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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못 속인다.. 그때는 친형도 초딩이었으니까...
굳이 동생한테 주려고 좋은 종이를 가져온 게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ㅋ
자기도 좋은 딱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확실 한 건 아니지만..
애니웨이~
어느 날 어느 때부터 친형이 미친 듯이 동네의 딱지대마왕들을 다 잡으로 댕기더라.. 무술계의 도장 깨기랄까... ㅋ
기술이 들어가야 된다.. 공구 좋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공구를 쥔 손이 제길슨이면 도루묵이다.. 이거슨 진실!
두어 달 채 안되었지 싶은데.. 친형이랑 나랑 라면 박스 두 박스에 꾹꾹 눌러 담은 딱지를 세어보니 대략 4~500장은 됐던 것 같다..
여기저기 숨겨뒀던 것을 보물이랍시고 라면 박스에 모아 방구석 어디다 숨겨놨던 것이 한여름 그날 사건의 시작이었다..
초저녁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오신 아부지가 어떻게 오똑해 그걸 발견했는지.....
딱지가 한두 장도 아니고 라면 박스 두 개에 가득한 수백 장..
'이느므 시키들이 공부는 안 하고 딱지치기만 하고 댕기나?'
자칫하다간 '너거 아부지 머 하시노?' 이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 제길슨!
나이 먹으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라도 불같은 아부지 성격을 모를 리 없는 우리는 짱구를 굴리다가..
나는 꼬맹이라 아무 생각이 없고 손발만 부들부들...
친형이 그랬다.. '다 뿌려버렷! 어차피 우리는 못 쓸 것들!!'
동네 애들 다 불러 모으랜다..
내 친구 몇 녀석에게 말을 건냈더니 영화처럼 거짓말같이 서른 남짓 우리 집 앞에 모였더라.. 대박!
나의 조커! 에이스!! 딱지를 가져갔던 그 형이 팔을 가장 크게 벌리고 많이 가져가는 걸 봤다...
쿨하던 친형의 얼굴, 눈동자가 얼핏 기억난다.. 떨렸다...
쎄가 빠지게 모은 건데 한순간에 '앗싸 가오리'도 아니고 '앗싸 나가리' 되니 오죽했겠나.. 자기도 초딩이었는데...
그 딱지 기억할래나.. 하겠지?
다음에 집에 오면 물어봐야겠다.. "행니마! 그거 기억나나? 그 딱지 있다아이가.. 우리 두 박스 뿌맀다아이가!"
술 됐다..
담배 사러 가야겠다.....
가는 김에 맥주나 잔뜩 사 와서 들이부어야겠다.......
RICOH GX200
2024. 7. 9.